“부처님 맞을 연등, 24년째 우리가 만들어요!”
올 연등축제에 행렬등 1,500여 개 선봬
​​​​​​​“손끝 닳도록 꽃잎 말면 잡념 사라져요”

전국의 불자들이 불기2566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봉축 행사를 준비하며 기대감에 들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연등회가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재개됐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앞두고 ‘연등 만들기’에 분주한 천태종 서울 관문사 ‘상락회’와 아기부처님 관불단 꽃장엄을 시연한 부산 삼광사 ‘원회’를 찾았다. 편집자

관문사 신도들이 지회방에 둘러앉아 연등행렬에 들고 나갈 개인등을 만들고 있다.
관문사 신도들이 지회방에 둘러앉아 연등행렬에 들고 나갈 개인등을 만들고 있다.

서울 관문사(주지 경혜 스님)를 찾은 지난 4월 14일, 도량은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를 준비하는 신도들의 설렘으로 들썩였다. 신도들은 1층 지회방과 2층 어린이법당에 둘러앉아 연등을 만들고 있었다. 상락회 회원인 한순자(74, 회장)·황간난(83, 교무위원)·김옥희(69, 재무)·조전자(71, 총무)·엄계숙(70, 홍보위원) 불자도 신도들과 함께 정성스레 제등행렬용 연등을 만들고 있었다.

상락회(常㦡會)는 관문사가 산문을 열 당시 창립해 24년째 봉축 연등을 만들고 있는 신행단체다. 창립 당시에는 13명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오랜 경험으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5명의 베테랑 회원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4년간 매년 연꽃등 만들어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어린이법당에 들어서니 길게 이어붙인 작은 책상에 상락회 회원을 비롯해 수십 명의 불자들이 네다섯 명씩 조를 이뤄 연등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한 사람이 뭉쳐있는 종이 연꽃잎을 입김으로 불어 한 잎씩 떼어 펴주면, 다음 사람은 연꽃잎 끝을 손가락으로 말아 뾰족하게 주름진 연꽃잎을 만들어낸다. 그 다음 사람은 연꽃잎 끝부분에 조심스럽게 풀을 바르고, 맨마지막 사람은 준비된 철사 골조에 연꽃잎을 붙인다. 반복된 작업 속에 연등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신도들의 손가락 끝이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생명을 불어넣듯 한 잎 한 잎 빚어낸 연등에서 ‘등 공양’에 담긴 부처님오신날의 참뜻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연등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시간 가량 소요되지만, 수십 년 세월동안 함께 등을 만들며 합을 맞춰온 상락회 회원들은 숙련된 솜씨 덕분에 20분 남짓 만에 연등 하나를 완성해냈다. 언뜻 보기에도 정성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지만, 완성된 연꽃등을 말리기 위해 옮기는 신도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와 함께 신심이 묻어나왔다.

연등회(燃燈會)때 사용할 등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상락회 회원뿐 아니라 신도회 각 지회와 관문사 신행단체 회원들의 손길도 필요하다. 제등행진을 할 때 스님과 신도들이 손에 들고 거리를 행진할 연꽃등은 대략 500여 개, 개인등은 무려 1,000여 개에 달한다. 올해 개인등은 초롱 모양 골조에 그림이 그려진 한지를 붙여 만들었다. 디자인 공모를 통해 모양이 결정되면 인쇄된 종이를 재단해 완성한다. 몸통 면에 4장, 상부 면에 4장, 하부 면에 4장, 바닥면에 1장 등 총 13장을 잘라 붙여야 등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 개인등 한 개를 완성하기까지 평균 한 시간가량 소요되나, 숙달되면 30~40분 정도로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관문사 등 제작에는 많은 신도들이 동참하고 있다. 평일에는 30~40여 명, 주말에는 100여 명이 날마다 동참하는데, 주로 기도를 마친 신도들이 지회방이나 어린이법당에 들러 연등을 만든다. 제작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 직장인들은 퇴근 후 사찰에 들러 늦은 밤까지 일손을 보태기도 한다.

상락회 창립과 함께 지금까지 연등 제작을 맡아 봉축 행사를 준비해왔다는 황간난 교무위원은 “50대 후반에 관문사에 기도를 하러 왔다가 연등 만들기에 푹 빠져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손끝이 닳도록 꽃잎을 말아야 하지만 만드는 동안에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잡념과 갈등이 사라진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마음을 다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고 생각하면 신심이 절로 나 기쁘다.”고 말했다.

“연등회, 함께하면 더 즐거워요”

연등회를 준비하기 위한 연등 작업공정은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작업이다. 20년 동안 관문사에서 연등을 만들며 상락회원들을 이끌고 있는 한순자 회장은 “연등회는 혼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축제”라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연등을 만들다 보면 15시간 이상씩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도 힘든 줄을 모른다. 봉축하는 마음으로 모인 분들이 정성을 다하고 있으니, 올해 연등회는 여법하고 환희심 넘치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관문사의 연등 작업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 나이와 성별도 상관없고, 손재주가 없어도 하고 싶은 의지와 관심만 있으면 참여가 가능하다. 상락회 회원은 아니지만 5년간 매년 연등 만들기를 돕고 있다는 김옥자(71) 불자는 “손재주가 뛰어나지 않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종이 연꽃잎을 한 장 한 장 붙이다 보니 어느새 연꽃등이 하나 만들어지더라.”면서 “직접 만든 등을 들고 제등행렬에 참여할 생각을 하면 노고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연등회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양재사거리까지 연등 3,000개 설치

부처님오신날은 불자들만의 축제가 아닌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의 축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찰은 도량 뿐만아니라 인근 도로에도 오색의 연등을 내건다. 서울 관문사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인근 도로에 연등을 내걸고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했다. 경내에서부터 시작되는 연등의 향연은 양재사거리까지 약 3㎞ 가량 이어진다. 거리에는 3m 간격으로 3,000여 개의 연등을 달아 우면동과 양재동 일대를 화엄의 세계로 장엄한다. 사찰 입구에는 제등행렬에 참여할 국기등·종기등·범종각등·법화경등·용등·코끼리등을 비롯한 10여 개의 화려한 대형 장엄등이 전시돼 시민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

대형 장엄등을 부처님오신날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는 긴 준비기간과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보통 음력 설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각 분야 전문가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를 거쳐 새롭게 제작할 장엄등이 정해지면, 철골구조물을 만든 후 재단과 재봉·전기 작업·한지배접·아교코팅·채색·방수코팅 등 6~7단계의 공정을 거쳐 장엄등을 완성한다.

기존에 있던 장엄등은 보관상태를 점검한 후 보완할 부분을 세분화해 작업한다. 한지를 모두 해체한 후 보수할 부분을 확인하고, 뜯어낸 구조물에는 한지를 다시 일일이 감아 배접해야 하기 때문에, 2.5m 높이의 종기등 하나를 보수하려면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매달려야 한다.

관문사 개산 때부터 장엄등 제작을 총괄하고 있는 임종진(66) 관문사 종무실장은 “작업시간만 따져도 수개월이 걸리는 고단한 작업이지만 수행의 방편으로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주변 이웃들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는데, 희망과 치유의 등을 환하게 밝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장엄물 제작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날 상락회 회원들은 수행정진하는 마음으로 연꽃등을 만들며 올해 연등회가 모두 함께 화합하는 국민의 축제가 되길 기원했다. 연등행렬을 따라 온 거리를 은하수처럼 총총히 수놓게 될 연등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自燈明 法燈明].’는 부처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는 만남이었다.

김옥자 불자, 한순자 회장, 황간난 교무, 김옥희 재무가 손수 만든 연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옥자 불자, 한순자 회장, 황간난 교무, 김옥희 재무가 손수 만든 연등을 들어보이고 있다.
임종진 관문사 종무실장이 연등작업실에서 대형 장엄등을 점검하고 있다.
임종진 관문사 종무실장이 연등작업실에서 대형 장엄등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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