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말과 정보
우리의 안전 위협
‘정어(正語)’ 실천해야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이 있다.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피니 복합기, 공기청정기, 커피머신, TV . 온통 기계로 둘러싸여 있다. 그뿐인가 모든 스위치에 스마트스위치가 얹혀져서 헤이로 시작되는 명령어를 내린 순간 1초의 망설임 없이 내 말을 들어준다. 얼마나 편리하고 기분 좋은 일인가. 이런 경험은 나같은 디지털이민자들에게는 한없이 신기하다.

그런데 전기 공급이 안되는 순간 나한테 순종하던 이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멈춰버릴 것이다. 나는 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 어둠에 결박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우리 사회는 혼자 있어도 밀집해 있어도 위험하다. 인간은 늘 환경의 위협을 받고 있으니 우리는 안녕하지 않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보다는 얼마나 안전한 세상인가에 따라 인간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안전할텐데 그렇다면 위험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피할 수 있는 위험이 더 많다. 그것을 분산가능한 위험이라고 한다.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 발생하는 위험은 얼마든지 분산이 가능하다.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계 의존도를 줄이면 된다. 1960~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에너지 절약이 몸에 배어있었다. 어른들이 밤마다 하는 인사가 불 끄고 자라.’였다.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다같이 웃고 다같이 울었던 그 시절에는 오늘날의 환경오염은 생각할 필요가 없던 위험이다.

사람이 밀집해서 발생하는 위험도 분산 가능한 위험이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실행하는 제약을 거부할 사람은 없으니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분산 가능한 위험 때문에 생명을 잃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하지 않은 위험에 대해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성 부재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는 공감이 안되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유는 서로 힘을 모아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인데 나만 안전하면 남이야 어떻게 되던 상관 없다는 인식은 사회를 온통 위험에 빠트리는 결과를 낳는다.

요즘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잘못된 정보이다. SNS를 통해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정보의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 (Message)의 신뢰성은 정보를 가진 사람과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 상충하는 이해가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서 메시지를 불신하는 것이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이때 최첨단기술과 무한한 정보에 우리를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전해간다.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자아실현인데 우리는 두 번째 단계 안전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5번째 단계인 자아실현에 이를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부처님의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정어(正語)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올바른 말이 신뢰성을 높여주고 책임감있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무엇인가를 할 때 이것이 우리의 안전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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