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국민 요청으로
고용된 머슴임을 잊지말고
​​​​​​​초심 지켜 국민에 헌신해야

한국 정치가 걱정된다. 전 세계의 정치 질서가 혼탁하기는 하지만 작금의 한국 정치 수준이 삼류를 넘어 사류 이하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듣기에 거북하고 그 처신은 눈을 뜨고 보기에 부끄럽다. 오죽했으면 국민들이 한국 정치의 현실을 ‘구석기시대의 수준’이라고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일부 진영에 서서 박수치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진영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어놓은 대립하는 전선의 한쪽이다. 주인인 국민들은 머슴인 정치인들의 진영에 서는 단역 배우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를 감독하고 평가하는 주연 배우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의 한쪽 진영에 서서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국민들은 머슴의 상전인 국민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이들이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공약을 해왔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된 머슴들은 오히려 국민의 상전으로 군림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에게 주어진 월급과 보좌진, 차량 및 해외여행 등등의 특권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서유럽의 스웨덴처럼 머슴인 정치인들에게 국민에 대한 자발적 봉사만 주어질 뿐 보수와 혜택을 없애면 정치를 하는 이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상가’라는 생활공동체 속에서 살아온 불교 수행자들은 ‘포살’(상호비판)과 ‘자자’(자기비판)를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타인을 보호해 왔다.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我是他非, 自讚毁他戒]’는 계율관을 지극히 경계해 왔다. 그런데 한국 정치판에선 이러한 계율관을 ‘내로남불’로 곡해하여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으로 풍자하고 있다. 심지어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라거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로 왜곡하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머슴은 주인인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보듬어 주는 존재이다. 작금의 한국 정치인들 다수는 국민의 머슴이라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절대적 세력을 갖고 국민을 압도하는 자리로 착각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국민의 요청으로 고용된 머슴이라는 생각을 순간순간 잊어버린다면 그는 이미 정치인이 아니다.

머슴에게 수신 제가의 ‘수기’(수양)와 치국 평천하의 ‘안민’(치인)을 요청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을 통해 제왕(통치자)이 되겠다면 수신과 제가는 필수적 전제가 되어야 한다. 치국과 평천하는 그 다음이다. 수신과 제가를 하지 못하면 공인인 머슴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머슴 의식이 있는 이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전 의식이 있는 이는 정치인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의 신분 보장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특권 보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머슴 의식은 자기 봉사와 자기 헌신을 정체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과서인 <초발심자경문>은 수행자의 것만이 아니다. 불자들은 초심을 경계하여(지눌), 발심하고 수행해서(원효), 스스로 타일러 쓰는(야운) 이들이다. 머슴들도 상전인 국민들을 섬기기 위해 초심을 경계하여 발심하고 수행해서 스스로 타일러 마음을 쓰는 이들이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본분을 각성해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한다면 한국 정치의 수준이 올라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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