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이타 정신으로
자녀 양육할 때
​​​​​​​성숙한 인간 키울수 있어

학교 안이나 밖에서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신체·정신 또는 재산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학교폭력(학폭)으로 정의를 하고 있다. 학폭 문제를 다룬 OTT 드라마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이 모이는 이유는 학폭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청소년 시절, 불의를 참지 못해 욱하는 마음에 주먹을 쓰는 폭력은 나 때에도 있었다.”고 말하지만 요즘의 학폭은 불의에 맞서는 정의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욱하는 마음에 저지른 순간적 폭행이 아니다. 요즘의 학폭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상대로 지속적이고, 주먹 이외의 도구를 사용하여 잔인하게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고문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악마가 되고 피해자는 영혼이 병들어 복수를 꿈꾸는 악령이 되는 것이다.

예전의 학교 폭력은 부모가 개입하는 순간 사과를 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끝나는 사고였지만 요즘의 학폭은 치료도 되지 않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사건이다. 학폭의 후폭풍을 줄줄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학폭은 부모 출세의 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혹자는 자식의 허물을 부모에게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연좌제라고 주장하지만, 아이가 학폭 가해자인 것을 알면서도 부모가 가진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서 자식의 죄를 은폐해주었다면 그것은 연좌제가 아니라 공범이다.

학폭 때문에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의 강력한 우승 후보가 중도 탈락하고, 드라마에 캐스팅 된 배우가 방영 도중 하차를 하고, 선수들도 학폭 문제로 코트를 떠나는 것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이제 더 이상 학폭을 방기해서는 안된다는 초조함이 생긴다. 이러다간 우리 청춘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모두 인생을 망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학폭은 교육의 문제이다. 첫째는 부모 교육이고, 둘째는 학교 교육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학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폭이 일어난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스승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이탈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기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상부상조 정신이 있었다면 요즘은 자기 자식이 잘 되기 위해서는 친구를 밟고서라도 올라서기를 원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서 실수를 한다.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이 해서는 안되는 잘못이었음을 고백하고, 용서해줄 때까지 참회하고 또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가슴 저리는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타심(利他心)’이 생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으로 자녀를 성숙시키지 않으면, 그 자녀는 나이가 먹어도 미성숙한 인간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괴물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우리 청소년들이 미래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사회가 ‘학폭 예방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유엔에서 매년 발표하는 인류행복지수에서 북유럽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는 북유럽 문화 전반에 배어 있는 ‘얀테의 법칙’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지나친 야심을 품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배려·평등·겸손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저절로 학폭이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될 것이고, 인류행복지수 최하위인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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