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염치 사라진 사회
불교 고전 숙독 통해
​​​​​​​부끄러움을 돌아보자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부끄러움’과 ‘염치’가 사라진 듯하다. 체면을 차릴 줄도 알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알지 못하는 탈염치의 흐름이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 해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현재 우리 사회의 공인인 사회지도층에서부터 개인인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까지 ‘도덕적 해이’가 번져가는 듯해서 안타깝다.

종합편성방송이 저변화된 현실에서 시사와 뉴스를 보면 잘못을 저지르고도 시간을 끌고 내용을 뭉개는 정치인들을 보게 된다. 사회지도층이자 국민의 심부름꾼인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이면 일반 국민들도 그들을 뒤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면 개인인 일반 국민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공인인 정치인들이 뒤따라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바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했다. 시인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워함이 없고[仰不愧於天]’, ‘굽혀서 사람에 부끄러워함이 없다[俯不怍於人]’는 <맹자>의 구절을 원용해 명시로 승화시켰다. 이 시는 나라를 빼앗긴 현실과 긴밀하게 접목되어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논어> 또한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 즉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가다듬는 것은 역대의 모든 성인들이 힘주어 설한 대목이다. 일찍이 붓다는 수행자에게 ‘독일정처 전정사유(獨一靜處 專精思惟)’ 즉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밀하게 사유하라.’며 자신의 성찰을 역설하였다.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밀하게 사유’할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가다듬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염치와 부끄러워함을 알기 위해서는 동서양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의 고전과 종교 예술의 고전을 숙독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감각적 욕망에 대해 경계하는 붓다의 자세한 말씀이 담긴’ 한역 <아함경>과 우리말 오부 <니까야>를 읽을 필요가 있다.

주제 중심으로 엮은 <상윳타 니까야>와 한역 <아함경>에는 붓다의 생생한 설법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고 돌아보게 하는 법문이 즐비하게 나타나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안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워함과 염치가 주요한 주제와 문제로 등장해 있다. 자신의 염치와 부끄러워함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홀로 한 고요한 곳에 앉아 오로지 정밀하게 사유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염치와 부끄러함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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